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812년 서곡 (문단 편집) ==== 소련 시절 ==== [[소련]] 시절에는 금지곡이 되었다. 1917년 [[러시아 혁명]]으로 제정이 몰락하고 공산정부가 들어서자 도입부와 결말부에 [[정교회]] 성가 "주님, 당신의 백성을 구하소서(Спаси, Господи, люди Твоя)"이 인용되어 있고[* 이 부분의 가사는 "당신의 십자가로 우리를 구하소서"라며 예수에게 적을 쳐부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이다. 당연히 [[무신론]]을 내세운 소련에서는 합창곡으로 부르기 거북한 내용이다.] 특히 결말부에는 이 성가와 이어지며 인민의 적이었던 [[차르]]를 숭배하는 러시아 제국의 국가인 "신이여, 차르를 구하소서(Боже, Царя храни!)"도 인용된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. 이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차르에게 빵을 구걸했다가 수백명이 차르의 군대에 학살당한 1905년 [[피의 일요일 사건]] 사건 이후 차르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나빠진 것도 한 몫했다. 하지만 1945년 소련이 히틀러와의 대결인 [[독소전쟁|대조국전쟁]]에서 승리하자 러시아가 나폴레옹과 대결해서 승리했던 1812년 전쟁이 재평가되었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이 웅장한 곡을 사장시키는 것은 너무 아까웠기 때문에 연주할 궁리를 했다.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문제가 된 차르 찬가 대신 다른 선율로 '''땜빵'''하는 방법이었다. 비사리온 셰발린[* 1902-1963. 서방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소련 최고의 작곡가 중 한 명이었다.]이라는 작곡가가 소련 정부의 지시로 이 작업을 떠맡았고 [[제2차 세계 대전]] 당시 애국심을 상징하던 [[미하일 글린카]]의 '''오페라 '이반 수사닌(Ivan Susanin/Иван Сусанин)'에 나오는 합창 '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vO6fRblZDqE|영광(Славься)]]'의 멜로디'''를 "신이여 차르를 구하소서" 대신 넣었다. 또 도입부와 말미의 정교회 성가 "주님, 당신의 백성을 구하소서"는 원래 합창이 붙어 있지만 곡만 연주하게 되었다. [youtube(U6XFtFkU0gw)] 1974년에 녹음된 소련 버전의 결말부. 하느님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성가의 코러스는 사라지고 연주만 되며 2:45부터 러시아 제국의 국가인 "신이여 차르를 구하소서"가 글린카의 "영광"으로 대체되었다. 좀 아이러니한 것은 글린카의 해당 오페라는 17세기 대동란 당시의 전설적 인물인 이반 수사닌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라는 것이다. 전설에 따르면 당시 폴란드군이 [[로마노프 왕조]] 초대 차르로 즉위하려는 [[미하일 1세 |미하일]]을 찾아 죽이려고 하자 수사닌은 길안내를 해 주겠다고 자청해 폴란드군을 이끌고 숲속 깊은 곳으로 가 길을 잃게 하여 같이 동사했고 그 틈에 미하일은 살아남아 로마노프 왕조를 개창했다. 수사닌은 이렇게 로마노프 왕조의 대표적인 충신으로 대대로 기려졌으며 이 오페라는 이런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. 사실 이 글린카의 "영광"은 이 오페라의 종막인 결말 부분에 나오는 합창곡으로, 수사닌의 희생을 통해 살아남은 미하일이 차르로 등극하는 대관식을 할 때 울려퍼진다. 가사만 보면 "신이여 차르를 구하소서"나 대동소이한 내용이었다. 이 오페라의 부제가 '차르에게 바친 목숨(A Life for the Tsar/Жизнь за царя)'이었을 만큼 목숨을 바쳐 제정에 충성을 바치자는 내용이었다. 하지만 곡이 워낙 좋은 데다 신이나 하느님 같은 종교색이 가사에 전혀 없었기 때문에 스탈린 시절에 가사만 살짝 개사되어[* 가사 중 "우리 러시아 차르님"(наш русский Царь)을 "너, 나의 러시아여"(ты Русь моя)로 바꾸어서 차르 찬양을 국가 찬양으로 바꾸었다.] 군가로 쓰였다. 그리하여 차르를 찬양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내용이 가사에 있는 "신이여 차르를 구하소서"보다는 거부감이 훨씬 덜했다. 여담으로 소련은 이 곡뿐 아니라 슬라브 행진곡, 대관식 축전 행진곡과 같은 차이콥스키의 여타 차르 찬가 인용 작품들도 글린카의 노래 선율로 땜빵하거나 아예 그 부분을 삭제했고 수정된 곡들은 소련 정부에서 공인한 '신 차이콥스키 대전집'의 악보로 묶여 출판되었다. [[제1세계]]에서는 이런 개정을 원곡 훼손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. 다만 소련의 입장에서도 차르는 명백한 구체제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차르 찬양에 관련된 음악을 가만히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. 하지만 러시아 음악에서 차이코프스키 작품을 [[금지곡]]으로 지정하여 배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명백한 차르 찬양 곡조만 개정해 살려두는 것이 그나마 차이코프스키를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소련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였던 것이다. 사실 정치적 이유로 인한 [[금지곡]] 지정 문제는 소련만의 문제는 아니고 국제적으로도 혁명이나 전쟁에 관련되었다는 등의 사유로 인해 자주 일어난다. 이스라엘에서는 [[리하르트 바그너]]의 [[반유대주의]]적 성향 때문에 바그너의 모든 곡의 공개연주가 금지되어 있다. 유럽에서도 [[호르스트 베셀의 노래]] 등 [[나치]] 관련 곡들은 영화 같은 특수한 사정 아니면 모두 연주가 금지되어 있다.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며 1990년대까지 여러 곡들이 [[금지곡]]이었다가 민주화 이후 풀린 바 있다. 이와는 반대로 1980년대까지 널리 불렸던 [[선구자]]라는 가곡은 금지곡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가사의 친일 논란 때문에 1990년대 이후 부르는 것이 금기시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